정지아 작가의 신작이 나왔단 소문을 듣고 도서관에 바로 신착도서 신청을 했다.
그리하여 새책으로 만나보게 된 <찌니주의보>

정지아 작가 책은 예전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구성진 사투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신작도 전라도 사투리가 예술이다.
한평생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사투리가 여전히 낯설다.
그래서 <찌니주의보>를 읽을 때 마을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한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 글자씩 입안에 굴려보며 소리 내어 따라 읽었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전라도 사람이 된 것처럼 성조(?!), 인토네이션(!?!)을 갖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소리 내 읽으니 무슨 소린지 알아듣겠는 마법ㅋㅋ
<찌니주의보>는 레지(레즈비언)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듯 이주한 시골마을에서
찌니들의 성정체성이 밝혀지며 일어나는 이웃들과의 소동이다.
동성애자인 찌니들과 그녀들의 친구 기희 또한 애완 닭을 기르는 비주류.
찌니들은 시골 할매들의 거침없는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상처를 받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다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
독자들은 윤선생, 절골댁, 쑤언, 한씨댁 등 할매들 각각의 우주를 들여다보게 된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그네들의 사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왜 그 꼴의 사람이 되었는지 절절하게 와닿는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비주류들이 모여 서로를 보듬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무리 밉살맞은 사람이라도 죽게 둘 수 없다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이웃이 된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절골댁이 찌니들을 외면하다가
윤선생을 도와달라며 부탁하기 위해 절골댁네 집에 초대했을 때다.
절골댁은 남들 다 다니는 길 조심조심 살아도 쉽지 않은데,
찌니들이 어려운 길을 택하냐며 그들을 안쓰러워했다.
절골댁네서 나오며 이장이 얘기하길,
절골댁은 젊은 시절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다는 얘길 해준다.
절골댁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줄줄이 넷을 낳았는데,
가족들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딸 넷 모두 대학 졸업까지 시켰단다.
절골댁은 아무리 고됐어도
네 명의 딸이 커가는 것 보며 버텼다.
넷 중 아직도 시집을 가지 않은 두 딸을 보면
자기는 애들 커가는 거 보며 버텼는데,
딸들은 아이도 없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버틸까, 싶을 거라고.
아마 찌니들 소문을 들었을 때
자기 딸들이 생각나지 않았겠냐,
그러니 이해해 줘라. 뭐 이런 장면이었다.
아마도 이 부분이 내 마음에 박힌 걸 보면
지금 딱 내 상황이 절골댁 같아서이지 않을까?
아이들이 유일한 버팀목, 아이들 커가는 걸 보는 재미로 산다는 것.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더라도
내가 속절없이 무너 저 내리지 않게
정신줄을 꽉 붙잡고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아이를 낳아본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이장의 아내인 쑤언도 인상 깊은 캐릭터였다.
촌구석에 시집온 베트남 여자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그녀 또한 우리 사회의 비주류다.
다행히 쑤언은 시어머니를 잘 만났다.
하나부터 열까지 쑤언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주는 그녀의 시어머니 양촌댁.
쑤언을 위하는 양촌댁 부분을 읽을 땐 성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양촌댁의 품성을 닮고 싶다.
무엇이든 품어주는 그릇이 큰 사람.
상대가 누구든 편견을 갖지 않고 그 사람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사람.
요즘엔 이웃과 완전히 단절하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나 또한 그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이웃들을 만나게 되며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니 마을에 애착이 생기고,
정신 차리고 보니 이사할 생각을 하면 이웃들이 눈에 밟힐 처지가 되었다.
내 아이들까지 자기 아이처럼 품어주는 사람들.
나도 좋은 이웃이 되어야지.
아무리 혼자가 편한 사람이어도,
결국 관계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치유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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